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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Life

[군인, 어디까지 가봤니] 09. 호주, 세상의 중심으로 떠나다

by 공군 공감 2015. 5. 11.






군인, 어디까지 가봤니

호주, 세상의 중심으로 떠나다

 

이번 「군인, 어디까지 가봤니」의 주인공은 제1전투비행단 항공정비전대본부 정비관리과에서 근무 중인 병 745기 김주성 일병이다. 우리에게는 캥거루와 펭귄, 워킹홀리데이, 패밀리 레스토랑 등으로 더 친숙한 오스트레일리아는 18세기 영국 해군에 의해 본토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정복당하면서부터 서구의 역사에 편입하기 전까지 '주인이 없는 땅Terra Nullius’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자로 기록되거나 타 대륙에 알려진 바가 없는 척박한 곳이었다. 이후 골드-러시Gold-rush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국가들과 활발한 상업활동을 전개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이주한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연방국가로 자리 잡았다. 김주성 일병이 입대를 앞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호주 여행기를 통해서 현대문명에 의해 개척되기 이전 시대의 호주 대륙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를 느껴보도록 하자.

 


고민, 허전함, 그리고 갈증

2014년 봄, 입대를 6개월여 남겨놓은 나에겐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아직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한 20대 초반의 나이에 입대하면서 지금까지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지, 그리고 군생활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변해버릴

내 모습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심려……. 이런저런 걱정을 마음에 담아두면서도 사실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한편 나는 가슴속 저 깊숙한 구석에서부터 해갈되지 않은 허전함을 느껴 괴로웠다. 머지않아 이토록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나를 달래줄 방법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혔는데, 그 탈출구가 나에겐 바로 여행이었다.

   취기가 한껏 올라 내 안에 든 모든 것을 게워내던 숱한 밤처럼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내 인생에 끼어든 모든 답답한 문제들을 풀어헤쳐 놓고자 내가 선택한 여행지는 바로 오스트레일리아, 그것도 하늘과 땅이 맞닿도록 끝없이 펼쳐진 사막지대였다. 어릴 적, 지구의 배꼽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랗고 붉은 바위라고 불리는 “울룰루Uluru”를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울룰루 사진을 본 이후 언젠가 저 넓은 사막을 건너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마치 그처럼 막연한 꿈이 나에게 직접적인 경험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급작스럽게 여행을 떠나버렸다.

 

진하고 거칠게

평소 항공우주기계공학이라는 전공과 무관하게 영상을 찍고 제작하는 것에 매료되어 있던 나는 대학생활 중 VJ로 활동하면서 여행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영상을 제작해왔다. 비록 여전히 아마추어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촬영한 영상이 방송되기도 하고 직접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도 하면서 여행과 영상제작에 대한 내 애정은 더욱 무르익어왔다.

   언젠가부터 남들을 따라서 사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 같은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영역 언저리를 하염없이 맴돌고만 있었다. 아마도 대학에서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영역이 극명하게 다른 사람들은 이처럼 표현할 길 없는 복잡한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당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이야기를 곁에서 들어주고, 또한 입대를 앞두면서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 모두 이번 여행이 입대 전에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진하고 거칠게 보내기를 바라며 시드니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상의 중심을 향해

울룰루로 가기 위해 잠시 들렀던 시드니에서 보낸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로 길을 옮겼다. 시드니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는 비행기로도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오히려 우리는 호주 대륙을 위에서 내려다 보며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 낸 광활함에 매료되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도시인 앨리스 스프링스는 호주식 영어로 ‘오지’를 뜻하는 아웃백Outback 지형이 많아 사막지대를 트랙킹하는 여행자들의 거점도시로도 유명한데, 특히 이곳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착민인 애버리진Aborigine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아 여행하는 동안 종종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애버리진은 18세기 말, 식민지 개척시대에 유럽인들이 이주하기 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성스러운 땅으로 여기며 이곳에서 약 5만여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이후 정복자들과의 마찰로 토착민들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그들은 과거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과 문화가 파괴된 후에도 여전히 같은 대지에서 묵묵히 살아나가길 바라고 있다. 호주 정부 당국에서는 토착민들에게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의료혜택을 제공하지만, 대다수의 애버리진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이 모든 애버리진에게 설득적이진 않았던 탓에 이들 원주민 일부에게도 현대물질문명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많은 수의 애버리진은 현대식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실업상태에 놓여있고, 이들은 각종 범죄와 도박 그리고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옷을 갖춰 입지도 못하고 낮에는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려 팔아 돈을 벌고 밤에는 카지노에서 이를 다시 탕진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현대물질문명이 이들에게 남긴 상처는 세대를 거듭하며 단지 무뎌졌을 뿐,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메마르고 척박한 대지: 아웃백

세상의 중심, 그리고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룰루와 이를 둘러싼 사막지형을 돌아보려고 우리는 몇몇 여행자들이 2박 3일 동안 함께 캠핑하며 지내는 체험여행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중부 내륙지방의 메마르고 척박한 지형을 아웃백 지형이라고 부르는데, 수백 킬로미터 동안 펼쳐진 사막지대를 건너는 동안 민가는 물론이거니와 농장이나 가게를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반드시 물과 식량을 준비해야만 했다.

   익히 들었던 것처럼 사막지대의 일교차는 매우 컸다. 겨울이었음에도 낮에는 섭씨 30도를 웃돌다가도 밤이 되면 영하 3도까지 내려가는 현상 때문에 방한防寒 용품을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었다. 해가 지기 무섭게 기온이 떨어지고 한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면 낮에 모아둔 땔감으로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쫓아내었다. 아웃백 여행에 참가하면 여행자들이 모두 협동하여 땔감을 모으고, 직접 요리부터 설거지까지 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사막에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더 이상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해가 뜨면 활동하고 해가 지면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자연적 시간’에 나를 내맡겨 그간 잊고 지냈던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캠핑하는 동안 초원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과연 현대문명의 혜택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들을 제공하고 또 우리에게서 어떤 것들을 앗아갔는지 생각하기도 했다.

   사막에서 맞이하는 잠자리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잔인했다. 영하 3도의 추위 속에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모랫바닥에는 ‘스웨그Swag’라고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양치기들이 사용하는 침낭에 들어가야만 했다. 침낭 속에서는 옷을 다섯 겹이나 입고도 벌벌 떨면서 한참을 자다깨다 반복했는데, 신병교육훈련을 받으면서도 하지 않았던 혹한기 체험을 우리는 그 먼 곳까지 가서 체험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그럼에도 그날 보았던 끝도 없이 펼쳐진 별빛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또 다시 사막 한가운데로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 인생에 찾아들었던, 그토록 찬란한 별빛이 지닌 아름다움만큼의 결심이 없는 한, 나는 평생을 도시에서 살게 될 테고 다시는 그날 밤과 같은 남반구 하늘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의 거칠고 척박함 속에서도 나는 가장 달콤하고도 낭만적인 풍경을 가슴에 담고 돌아올 수 있었다.

 

나에게 남겨진 것들

다음 날 정오께에, 우리는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울룰루에 도착했다. 애버리진은 고대로부터 울룰루를 세상의 중심이자

배꼽이라고 여겨왔는데, 이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지대에 말없이 덩그러니 놓여 그 압도적인 모습과 함께 태양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붉은 빛과 그림자 때문이라고 한다. 이토록 커다란 ‘덩어리’가 어떻게 이곳에 놓여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울룰루가 내비치는 신비로운 광경에 애버리진의 조상들은 일찍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는 신화의 역사로부터 시작해 자연을 이해하고 정복하여 마침내는 자연 속에 우뚝 선 인간상을 표방하는 정복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여행한 오스트레일리아는 그 거대한 땅이 주는 힘과 아우라Aura만으로도 이미 인간으로서는 어찌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준 하나의 작품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말그대로 대지에 몸을 밀착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자기자신의 역사를 써내려나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성찰로 우리는 비로소 입대를 앞두고 한편으론 어지럽고 메스꺼웠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지난 어떤 경험에 비해서도 힘들 때마다 미소 지으면서 떠올리고 그로부터 모든 힘든 일들을 이겨낼 용기를 주는, 좋은 추억 그 이상의 값진 경험으로 남은 것 같다. 그리고 2년 뒤 내가 다시 나의 세계를 열어갈 때가 되면 오늘의 군생활도 이와 같은 경험과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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