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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Life

[공군, 인문학을 말하다] #000. 프롤로그

by 공군 공감 2016. 12. 9.



프롤로그


군인을 위한 인문학 이야기




  요즘 같은 가을밤 서울역 광장에서

  우리는 아침을 기다리며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 한기도 피하고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 故유창만









  어떤 시(詩)가 있습니다. 유명한 시는 아닙니다. 시인의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잔잔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비록 집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의 따뜻한 집이 되어 겨울 하룻밤을 무사히 지냈다는 사연이 녹아있는 시죠. 그렇다면 어떤 시인이 이렇게 실감나게 노숙인의 처지를 표현했을까요? 성프란시스 대학 노숙인을 대상으로 서울시와 성공회대학교가 함께 운영하는 인문학 강좌에서 인문학강좌를 수강하고 2010년에 세상을 떠난 故유창만 노숙인의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라는 시입니다. 










  ‘노숙인 자활엔 밥 한 끼보다 인문학 강의가 낫다’는 구호 아래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강의’를 개설한 대학이 있습니다. 바로 성프란시스 대학입니다. 과연 노숙인 자활에 밥보다 인문학 강의가 나을까요? ‘EBS교육현장 속으로: 노숙인, 철학자가 되다’에서 박남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쉽게 와 닿을 거예요. ‘나도 세금을 내고 싶어요.’, ‘나도 집에서 청소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싶어요.’ 이런 한 마디가 그분들의 내면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해요. (중략) 돈을 버는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돈을 벌어야 하는 의의와 의미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게 되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해요.”





  학교가 세워진 2005년 이후 2016년까지 성프란시스 대학을 수료한 노숙인은 모두 178명. 이들 가운데 절반은 취업에 성공했고 2/3는 몸을 뉘일 소중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과연 때로는 밥보다 책이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문학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인문학을 배워야하는 걸까요?   또, 군인에게 인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문(文)을 상징하는 인문학과 무(武)를 대표하는 군인의 조합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두 분야가 만난 듯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군에서 인문학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부대 곳곳에 북카페가 생겨나는가하면,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앞서 소개한 성프란시스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정신적 삶의 양식’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졌고 문화와 오락거리는 늘어났지만, 정작 이러한 풍요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난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잘 사는 법’에는 ‘왜 잘 살아야하는지’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어떻게’가 아닌 ‘왜’를 고민하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인생을 지탱해나가는 힘을 주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입니다. 



군인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2년이라는 군복무 기간은 자칫하면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하염없이 전역만 기다리며 청춘을 낭비할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성프란시스 대학에서 인문학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게 해준다’고 했듯이, 인문학 공부는 군인들에게 군복무의 의미와 보람, 군인의 권리와 의무를 찾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문학을 맛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저는 이야기로 풀어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려고 합니다. 故유창만의 시를 먼저 소개한 까닭이지요. 이야기가 끝나면 감정은 무르익기 마련이고, 그것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감정은 평소에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이야기는 ‘목적이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스 비극을 읽으며 슬픔을 느끼고, 추리소설을 읽으며 흥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인문학은 그런 낯섦의 원인을 추적합니다.



 ‘나는 왜 이걸 읽고 슬픔을 느꼈을까?’, ‘왜 여기서 주인공의 감정에 깊이 몰입해서 읽었을까?’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물음표는 ‘사람’에 찍힙니다. ‘그 사람(혹은 나)은 왜 그랬을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인간과 나 자신을 성찰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앞서 인문학의 역할이 ‘왜’를 고민하게 함으로써 정신적 삶의 토대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는 질문과 탐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기에 좋은 방법이고, 제가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에게 인문학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코 짧지 않은 군생활, 인문학을 통해 여러분의 그 여정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꼭 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군, 인문학을 말하다’의 첫 번째 이야기는 ‘도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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