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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그리스 공군을 찾아서(2)

by 공군 공감 2017. 6. 5.

여전히 햇빛이 강한 셋째 날, 공감팀은 수소문 끝에 한국을 자국처럼 사랑하는 그리스의 한 노병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 나섰다. 

이오니아의 푸른 해변이 아름다운 삐루고스(Pyrgos)지역에  살고 있는 

6·25 전쟁 참전용사 페로스(FARROS)노병을 만나러 300km 넘게 달려갔다.

노병을 처음 보자마자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입고 있는 자켓 왼쪽 팔에 달려있는 “태극기”였다. 




노병이 이렇게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된 데에는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자, UN 회원국이였던 그리스 공군은 수송부대로서 제일 빠른 시기에 참전하였다.  



노병은 당시 나이 20세에 통역장교로 지원하여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노병의 아내분도 간호원으로두 부부가 6·25전쟁에 함께 참전했지만, 지금은 건강 상의 문제로 병상에 누워계셨다는 말을 전했다.  

노병은 2013년 정전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는 

6·25 전쟁 참전용사 추모 행사 참석을 위해 '부산 UN기념공원'에 방문하기도 했다. 


노병은 공감팀과의 인터뷰 중 60여년 전 춥고 치열했던 전쟁의 참화 속에서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시리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이름도 모르는 먼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참전하신 모든분들의 헌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노병께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네 개의 깃발과 기념비가 보였다. 

네개의 깃발은 태극기, 그리스기, 미국국기, 유엔기였고, 기념비에는 “Freedom is not free” 라고 적혀있었는데, 

앞서 노병이 눈시울을 붉히며 동료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이 비석의 문구를 보니 그 의미가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노병의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6·25전쟁 당시 작전일지와 당시 사용했던 군장류들. 

군장류들이 시간의 흐름이 무색할만큼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정성과 관심에 또 한번 놀랐다.




"Royal Hellenic Air Force". 그리스 공군이 6·25전쟁에 지원한 C-47 수송기 모형





박물관 내부에는 노병께서 모아놓은 6·25전쟁 당시 작전일지, 당시 군인들이 쓰던 군수품, 군복, 군장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의 치열한 현장과 참혹했던 그날을 기억하는 노병의 목소리는 점점 떨려갔고, 그 깊은 목소리의 울림 속에는 당당함과 자부심도 함께 깔려있었다. 

"다른 모든 16개의 참전국 용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한국에게 동정심과 우정을 느낀다"





노병은 그리스가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정말 올바른 판단이었으며, 그들은 당시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리스 군인들은 한국에 교회와 고아원을 설립하여 군사적인 지원과 함께 사회적인 지원도 함께 하였는데, 

그곳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시간을 가지며 전쟁 중 달콤한 휴식을 함께 취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아름다운 나라라 그리스인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훗날 자신이 생을 마감할 때에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일정, 아테네시 파파구에 위치한 6·25전쟁 참전기념비를 찾아서

아테네의 이름 모를 큰 도로에서 나와 5분여동안 골목 골목을 돌아 그리스 군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찾아낸 “6·25 전쟁 참전기념비”. 

기념비에 도착한 공감팀은 참배를 하러 들어가려고 했으나, 예상과 달리 기념비는 펜스에 둘러싸여 있었고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평소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인을 통해 키를 받아 기념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그리스 공군 예비역 대령 파나가리스 빌(Panagaris Bill)을 만나 6·25 전쟁에서의 그리스 공군의 활약상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아테네시 파파구에 위치한 “6·25 전쟁 참전기념비”. 전역한 군인들이 모여사는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기념비는 

철원 땅에서 온 피 묻은 흙도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좌 : 비석에 6·25 전쟁 중 전사한 그리스 공군 장병들의 계급, 이름, 마지막으로 작전을 수행한 날짜가 적혀있다. 

우 : "어느 땅에 묻히던 그 가치는 실로 소중하다." 라고 적혀있다.



그리스군은 약 10,000명 정도 6·25전쟁에 참전했는데, 그 중 공군 참전용사는 약 500여명이었다.


C-47 항공기 7대를 지원한 그리스 공군은 6·25 전쟁 중 4대를 소실하고, 13명의 소중한 용사를 잃었다. 

그들은 장교부터 부사관 병사까지 계급도 나이도 이름도 다양했다.

항공기 4대 중, 1대는 지상에서, 3대는 공중에서 파괴되었으며, 그리스 공군은 주로 수송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임무가 공산군의 항공전력 및 대공전력의 위험 속에서 임무가 진행되었다. 그 중 핵심임무는 환자 및 포로수송작전이였다.


 

공감팀에게 본인의 군 생활 시절 ID카드를 보여주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파나가리스 빌(Panagaris Bill) 예비역 대령.



"시베리아의 칼날 같은 바람이 정말로 차가웠는데 한국 군인들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작전을 수행했다. 우리는 UN 회원국으로 당연히 6·25 전쟁에 

참전해야 했고, 그리스 군인인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스 공군은 서울, 부산, 백령도 등 전선의 이동에 따라 한반도 전역 다양한 공군 기지에서 수송임무를 했다. 

당시 참전한 조종사는 책임자 준장 1명, 편대장 소령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중, 소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한반도에서의 주요 임무를 마치고 1955년 5월까지 한국에 주둔하면서 총 약 900시간을 비행한 뒤 귀국했다.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3일간의 모든 취재 일정을 돌아보았다. 

 

대한민국 군인이지만 나조차 잘 몰랐던 그리스군의 참전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스 공군은

험난한 전투 현장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항공수송작전을 성실히 수행한  "고마운 수송부대" 구나 라고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취재 일정 3일간 만난 10여명의 모든 참전용사들은 한결같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은 60여년 전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반세기만에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할 때, 

참으로 뿌듯하고 반갑습니다.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 내 나라는 아니지만 

내 나라인 것 처럼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저들도 이렇게나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데, 대한민국 국민이자 군인인 


나부터 우리나라를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잘 지켜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슴에 새겼다. 
 


       


마지막날까지 지중해의 태양은 뜨거웠다. 이 뜨거운 빛은 6·25 전쟁 당시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소리없이 임무를 수행했던 그리스 장병들을 비롯한 

수많은 연합군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을 것이다. 높은 하늘 아래서 내려쬐는 소중하고 밝은 빛이 언제나 밝게 빛나 

더이상의 전쟁의 소용돌이가 치지 않기를 바래보며 모든 취재 일정을 마치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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